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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겐스부르크의 연인 2006년 5월, 세계여행 중인 쁘리띠는 떠나볼까 업데이트를 하기위해 독일삼촌님이 제공해 주신 *일주일만 재워주세요* 장소인 독일 레겐스부르크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생각보다 거대한(?) 한인커뮤니티를 접했었는데요(업데이트 중에도 틈틈히...놀러..-_-), 재미난 분들을 많이 만났답니다. ㅎㅎ
맥주쟁이님 또한 제게 일주일PJ를 제공해주시겠다고, 게시판에 글을 써 주셨던 감사한 분이셨지요. ^^ * 쁘리띠의 세계일주 프로젝트 관련글 보기 *
어느날, 뜬금없이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
"왜 레겐스부르크의 연인은 없는거야? "
"프라하의 연인, 파리의 연인... 이제 레겐스부르크의 연인이 나와야하지 않을까? "
"쁘리띠님, 레겐스부르크는요, 독일내에서 유일하게 폭격을 받지 않아 재건하지 않은 두도시 중에 하나에요. 한국 사람들만 잘 모르지 일본사람들은 '올훼스의 창'의 배경으로 이곳을 많이 찾는다구요. 게다가 종교음악으로 유명하고 구시가지도 꽤 멋찌답니다. 그런데, 왜 방송사에서는 레겐스부르크의 연인을 만들지 않는 것이죠? "
"음...레겐스부르크는 사람들이 잘 모르잖아요. -.- '레겐스부르크의 연인'보다는 '하이델베르크의 연인'이 더 멋찌겠는데요? -_-"
"아, 하이델베르크도 아까 말한 폭격 안맞은 도시 중에 하나다!"
"그렇다면, 역시 '하이델베르크의 연인'이 더 멋찌겠는데요? -_-"
"레.겐.스.부.르.크.의 연.인. -_-"
 [위의 사진] '라버'는 레겐스부르크 조금 옆에 있어요. 기차로 20분 거리! 그래서, 류강하님은 레겐스부르크에서 주로 노세요~ -.-
그때 말은 그렇게 했지만, -.- 이 인터뷰에선 '레겐스부르크의 연인'이 드라마로 나오길 간절히 바라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자, 이제 인터뷰를 시작해 볼까요? :)
마이스터의 꿈 쁘리띠 : 자, 첫 번째 질문! 지금 독일에서 모하고 계세요? :) 류강하 : 맥주양조를 공부하고 있구요. 지금은 바이에른의 Laaber(Regensburg근처)에 있는 맥주양조장에서 실습생으로 있습니다. 1년 동안 실습과정을 마쳤구요. 앞으로 2년 더 실습을 한 다음 뮌헨에 있는 브라우 마이스터(맥주양조책임자) 아카데미에 갈 예정입니다.
쁘리띠 : 실습생이 되는데까지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고 들었어요. 류강하 : 한국에서 약 7년간 인터넷회사에서 서비스 기획 및 마케팅 담당자로 일을 했어요. 어릴 적 꿈이 독일에서 마이스터가 되는 것이어서 무작정 독일로 오게되었지만, 독일 유학 1년만에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라는 이유로 공부가 좌절되었다가.... 지금은 한국인으로써는 처음으로 이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쁘리띠 : 그때가 몇살이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마이스터 공부를 하러 떠난 때가요~ 류강하 : 독일로 떠나온 건 2003년 10월, 제 나이 28살때였구요, 2004년 11월에 한국으로 돌아 갔다가 다시 2005년 7월에 다시 와서 2005년 9월부터 실습생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죠.
쁘리띠 : 우아…28살... 보통 남자분들은 그때가 되면 직장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나이인데...-.- 류강하 : 그렇죠.
쁘리띠 : 그때 당시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면서요? 류강하 : 네, 나름 IT업계에서 자리 잡은 상태였어요. 하지만 제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제가 잊었던 어릴 적 꿈을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쁘리띠 : 어릴적 꿈이요? 류강하 : 어릴적 TV에서 독일 마이스터의 세계라는 프로가 있었어요. 그것을 보고 있자니 그져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가고 그래서 직장에 다니는 그런 삶이 아니더라구요. 한 분야의 마이스터로서 사회에서 인정 받는 모습, 그 마이스터가 되기 위해 긴 시간을 바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어요. 그래서 저도 그때 독일에서 마이스터가 되자라는 꿈을 꾸게 되었지요.
쁘리띠 : 주변사람들이 말리지는 않았어요? 류강하 : 당연히 많은 분들이 말렸어요. 아는 선배는 사람들이 알만한 인터넷 회사를 인수하려고 하는데 그 회사에 전체 운영을 부탁하기도 했구요… 하지만 꿈을 이루기로 결심한 이상 제 인생에 2쿼터는 수비보다는 공격을 하고 싶더라구요.
쁘리띠 : 그런 안정적인 상황을 버리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그렇지 않나요? 류강하 : 보다 세상을 적극적으로 살고 싶었어요. 사실 독일을 떠나 올 때만도 어떻게 해서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었고, 벌어 놓은 돈을 쓰기만 하는 상황이라 불안했죠. 하지만 제가 너무 세상에 안주 하고 산 건 같아서 한번 30세가 되기 전에 도전하고 싶더라구요.
쁘리띠 : 대단대단. 대단히 용기가 있으세요. 두렵진 않았어요? 류강하 : 사실은 많이 두려웠어요. 그리고 모든 것이 실패되고 한국으로 돌아간 2004년 11월은 정말 좌절이란 단어가 이런 거구나 느꼈구요. 개발도상국 국민에게는 실습생에게 줄 수 있는 비자와 자격 조건을 줄 수 없다는 주의회의 대답. 그때 처음으로 "내가 일본인으로 태어났다면..." 하는 생각을 했지요.
쁘리띠 : 그렇게 모든걸 버리고 새로 시작했던 게 개발도상국이라는 이유로 물거품이 되었을 때 이 길을 시작한 걸 후회하진 않았나요? 류강하 :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이유로 그러니 더 그렇더라구요. 나라 때문이니…ㅠ_ㅠ 사실 그땐 후회라기 보다는 정말 끝이구나 싶었어요. IT업계라는데 한 1년만 떠나 있으면 다시 돌아가기 힘든 업종이라…. 모아 놨던 돈도 전부 떨어지고 많은 것이 힘들었어요.
쁘리띠 : 그런데 왜 다시 도전하셨어요? 류강하 : 종교 때문일까요? 결국 할 수 있을꺼란 믿음? 아무튼 어떤 믿음 같은 게 있었어요. 이렇겐 절대 끝낼 수 없다라는…
쁘리띠 : 가장 큰 힘을 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가요? 류강하 : 부모님의 신뢰와 기도 덕분이라고 하고 싶네요.
쁘리띠 : 와, 정말 종교의 힘. 종교가 뭐세요? 류강하 : 천주교입니다. (쁘리띠는 이곳 천주교 커뮤니티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쁘리띠주)
쁘리띠 : 이건, 조금 주제와는 다른 질문인데…언제 신을 가슴으로 믿게 되었어요? 류강하 : 군에 있을 때 그랬던 것 같아요. 군 생활이 나름 힘들었거든요.
쁘리띠 : 자, 다시 돌아와서….-.- 어떻게 도전하셨어요? 기회가 왔던 건가요? 류강하 :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시작했죠. 40군데도 넘는 독일의 기관 학교 회사에 편지와 전화를 했구요, 바이에른주 의회와 주지사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그래서 저 때문에 주의회가 열렸었답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도 지금 있는 맥주회사의 사장님과 계속 연락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기회가 저에게 왔어요,
쁘리띠 : 그 사장님과의 인연은 어떻게 생긴 건데요? 류강하 : 4월 23일은 독일의 맥주순수령이 1516년에 발표된 날인데요, 그래서 전 바이에른 지역이 맥주주간이라 각각의 도시에서 맥주 축제가 있어요. 2004년 4월 23일날 레겐스부르크에서 열린 맥주 축제에서 이곳 정보를 알게 됐고 편지도 보내고 만나고 하다 알게됐고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계속 편지 보내곤 했지요.
쁘리띠 : 그 맥주 사장님은 ‘개발도상국’ 얘기에 어떤 의견이셨나요? 류강하 : 맥주사장님은 한국을 개발도상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제가 만난 독일 사람들도 아니라고들 생각해요. 아직 독일에서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정부의 문제인 것 같아요.
쁘리띠 : 자자, 그래서 그 사장님이 어떻게 도와주셨어요? 류강하 : 독일 정부 장관급으로 계시는 친구분이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법적부분을 맡아 주셨구요. 큰 맥주 회사에 있는 친구 분이 보증을 서 주셔서 가능했습니다.
 [위의 사진] 바이에른주 최고의 맥주, 상받던 날!! :)
쁘리띠 : 빰빠라빰. 기쁘셨겠어요? ㅎㅎ 류강하 : 네 그날이 2005년 9월 14일 이였는데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죠. 아침식사 시간에 사장님이 아쉽게도 한국으로 돌아 가야겠다 하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 하는데 그리더니 갑자기 웃으면서 군청가서 비자 받아와 그러시더라구요. 하하.
쁘리띠 : ㅋㅋ. 그때의 기분을 설명해주세요. 류강하 : 처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할 땐 이젠 정말 모든 게 끝났구나 생각 했는데 비자 받으러 가던 날 어찌나 떨리던지....ㅠ_ㅠ 힘들게 시작한 독일 유학생들이라면 제 이야기 다들 이해 할꺼예요.
쁘리띠 : 에이…조금 더~ 그때의 기분을 얘기해주세요. 류강하 : 모라 표현해야 하나 정말 힘들다… 으… 그 떨림 전율 그리고 어렵죠. 감동이라는게…하하하. 옛 것이 끝나고 새로운 것이 들어 오는 느낌??
쁘리띠 : 그 이후로 얼마나 흘렀나요? 류강하 : 1년하고 2개월이 지났지요.
쁘리띠 : 지금의 삶은 어때요? :) 류강하 : 처음엔 견습생도 저 혼자고 무척이나 일이 벅찼고 고단하고 함께 일하는 분들하고도 잘 안맞아 힘들었는데, 이젠 모든 게 익숙해져서 좋아요. 하지만 공부를 해야 하는데 게을러서 큰일이네요. [오른쪽 사진] 강하님이 일하시는 곳
쁘리띠 : 독일사람들과 문화차이를 느낀 적은 없나요? 류강하 : 문화차이라기 보다는 제가 전혀 하지 않던 일이라 많이 지쳤던 것 같아요. 원래 직업은 컴퓨터에 하루종일 앉아서 사무를 보는 것이였는데 엄청난 기계가 돌아가는 곳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이리 저리 뛰어 다니고 하면서 하는 것이... 그리고 화학용액들을 가지고 여기저기 청 하고 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특히나 공구들 이름들을 한국에서도 잘 몰랐는데 독일어로 갖고 오라고 할 땐 정말 힘들더라구요.
쁘리띠 : 그래서, 28살. 직장을 그만두고 절망을 맛보고 그렇지만 다시 원하는 것을 하게 되어 행복하신가요? :) 류강하 : 당연히 행복하다고 말 해야겠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항상 행복한 것만 같지 않아요. -.-
쁘리띠 : 하루일과를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류강하 : 보통 월요일엔 아침 3시에 기상해서 맥주의 기본이 되는 맥아즙을 생산 하는 일을 하구요. 그 과정이 8~9시간 정도 길리기 때문에 중간에 점심시간 갖고 오후 4시에 모든 업무가 끝난답니다.
쁘리띠 : 끝난 다음엔 모하세요? (술마시세요? -.-) 류강하 : 주로 인터넷과 티브이 그리고 맥주양조학 공부를 하구요, 날씨가 좋을 땐 산보나 자전거를 탑니다.
쁘리띠 : 가장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이 모에요? ^^ 류강하 : 냉면, 자장면, 회, 갈비, 떡볶이, 쫄면, 또 모가 있지..? -_-
쁘리띠 : 하하하하. 제가 독일가는 분들께... 강하님 만날 분들에게 특별히 사 가지고 가라고 말하려구요. ㅎㅎ 류강하 : 한국가면 사줄껀가요?? 흑흑
쁘리띠 : 한국오면 당연히 사드리죠~ :) 류강하 : 우와. 과자들도 먹고 싶어요. 한국 과자가 제일 맛있는 거 같아요. 독일 과자들은 영… (과자도 먹고 싶으시답니다! @쁘리띠주 -.-)
쁘리띠 : 아참, 떠나볼까 사이트는 어떻게 아시게 된거에요? 류강하 : 배낭여행 하는 선배에게 들었어요. 선배가 옥토버페스트 번개란 게 있다며 이곳을 알려 주었지요. 아쉽게도 제가 참가 할 수 있었던 올해 옥토버페스트 땐 번개가 없었더라구요. 넘 아쉬웠어요.
쁘리띠 : 내년에 하시면 되지요~ ^^ 옥토퍼스 번개 마니아를 만드실 수 있겠네요. ㅋㅋ 류강하 : 올해도 번개 했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으셔서 포기. ㅜ_ㅠ
쁘리띠 : 자,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류강하 : 젊을 때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고 하고 싶어요. 그리고 도전하라고… 사실 전 제가 유학을 할 꺼라고는 생각지 못했거든요. 근데 회사를 옮기면서 패키지여행으로 유럽에 한번 나와 본 게 제 인생에 큰 변화를 줬어요.
쁘리띠 : 어떤 변화요? 류강하 : 제가 외국에 나올 수 있다는…그리고 외국어를 해야 한다는 그런 다짐을 갖게 했지요. 그 전까진 제 평생 외국에 나갈꺼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요즘 배낭여행 오는 어린 친구들 보면 부러워요.
쁘리띠 : 그때의 외국은 어땠나요?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나요? 류강하 : 우연히도 제 첫 외국여행은 2001년 9월 12일이였어요. (9.11 테러 다음 날) 그래서 첫 여행지 파리부터 마지막 여행지 로마까지 관광객이 적어 기다리는 것 없이 잘 봤지요. 9월의 가을 흐린 파리의 거리를 버스안 창문으로 바라보면서 느낀 고독과 여행을 하고 돌아와 버스 안 창문으로 보이는 종로에서 느껴지는 고독함은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죠. 그래서 외국에서의 생활에 도전할 수 있었던것 같아요.
쁘리띠 : 마이스터가 되면 앞으로 뭘 하고 싶으세요? 류강하 : 제 맥주회사 하나를 갖고 싶구요, 제가 마이스터가 되는 과정이 힘들었기에 다른 도전하는 젊은이들을 학교를 만들어서 도와 주고 싶고, 제가 사는 바이에른을 소개하는 여행 책자도 쓰고 싶어요. 한국 사람들은 바이에른에 대해 잘 모르더라구요. 그리고, 독일에 오는 배낭여행객들도 도와주고 싶어요.
쁘리띠 : 우아,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들이 많으시군요! 떠나볼까 회원분들이 궁금해할 맥주와 독일얘기는 2007년부터 재미나게 써주세요~ :) (2007년 떠나볼까 개편이후부터 독일지역 필진으로 합류합니다. ^^ 기대해 주세요~)
그리고... 우리, 떠나볼까 식구들이 그곳으로 가면 조금 더 넓은 눈을 가질 수 있게 많이 도와주세요. ^^
 류강하님께 팬레터는 이곳을 클릭~! :)
[조금은 다른 이야기]
"나는 살렘의 왕일세."
노인이 말했다.
"어째서 왕께서 양치기와 더불어 이야기 하십니까?"
너무도 놀라 당황하고 들뜬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산티아고가 물었다.
"이유야 많지.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자네가 자아의 신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걸세."
산티아고는 '자아의 신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자네가 항상 이루기를 소망해오던 바로 그것일세. 우리들 각자는 젊음의 초입에서 자신의 자아의 신화가 무엇인지 알게되지.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여. 그래서 젊은이들은 그 모두를 꿈꾸고 소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그 신화의 실현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해주지."
노인의 이야기는 젊은 양치기에게 그리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무언지 알고 싶었다. 가게 주인의 딸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면 아주 놀라워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나쁘게 느껴지는 기운이지. 하지만 사실은 바로 그 기운이 자아의 신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네. 자네의 정신과 의지를 단련시켜주지.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그저 떠돌아다니고 싶은 마음도 그런 것인가요? 양털 가게 주인의 딸과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도요?"
"아무렴. 보물을 찾겠다는 마음도 마찬가지야. 만물의 정기는 사람들의 행복을 먹고 자라지. 때로는 불행과 부러움과 질투를 통해서 자라나기도 하고. 어쨌든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세상 만물은 모두 한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연금술사 중에서>
간절히 원하세요. 그리고, 진심을 다해 실천하세요. 그러면, 온 우주는 여러분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대요. :)
2006. 12. 4 pretty 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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