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글, '탑이야기
상편'에 이은 하편은 다음으로 연기됩니다.
*
글&사진 : 아무(황나영, oramge24@hotmail.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orange245
여러분은 '파리'를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제일 먼저 에펠탑이 생각나네요. 개선문과 신 개선문, 몽마르뜨
언덕과 물랭루즈 등등이 줄지어 떠오르지만 역시 파리를 상징하는
건 에펠탑이죠.
높은 건물이 별로 없는 파리의 구시가에서
에펠탑은 파리라는 도시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위키피디아의
이
주소로 들어가시면 에펠탑이 보이는
파노라마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1889년에 완성되었습니다. 당시의
많은 파리지앵들이 이 '흉측한' 탑의 건축을 반대했다는 건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지요.
벽돌이나 돌로 장식된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던 시대에 미리 제작된 주철을 못으로 조립하는 방식으로
지어진 이 건축물은 너무도 파격적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에펠탑은 파리지앵들 뿐만 아니라 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끼는, 파리를 대표하는 명소가 되지요.
이처럼
에펠탑은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자유와 평등을 상징하는 동시에 당시의
기술의 혁신을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는 전세계의 예술의 중심지였지요.
1930년
에펠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타이틀을 미국의 크라이슬러
빌딩에게 넘겨주게 되는 것처럼 예술의 중심지도 파리에서 뉴욕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에펠탑이 지어진 직후에는 새로운
기술이 열어줄 장미빛 미래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답니다.
그래서
들로네(Robert Delaunay, 1885-1941)라는 화가는 에펠탑을 주제로
빛과 색채가 반짝이는 듯한 아름다운 그림 연작을 그립니다.
에펠
탑이 상징하는 새로운 기술이 가져다줄 긍정적인 미래를 화폭에
그려낸 것이죠.
 [위의 그림] 왼쪽
Eiffel Tower(1911), 오른쪽 Homage to Bleriot (1914) 당시
비행사였던 블레리오에게 보내는 오마주인 이 작품에서도 에펠탑이 작게
나타납니다. 그림의 왼쪽 아랫쪽의 작은 비행기와 오른쪽 윗부분의
에펠탑이 보이시나요?
비록 기술은 장미빛 뿐 아니라 핏빛 미래를 가져다 주었고, 파리는
더이상 세계의 중심은 아니지만 에펠탑은 한때 찬란한 예술
문화의 중심지었고, '근대'를 열어준 큰 형님으로서의 파리를 잘
보여줍니다.
이처럼 도시 혹은 나라는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드니는
오페라하우스를 떠올리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고, 북경에는 그
깊은 역사를 지닌 자금성이 있지요.
그러나 도시를 대표하는
얼굴이 '진짜' 모습이라고 쉽게 믿어버리면 안됩니다.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테네, 또는 피라미드가 있는 이집트는 직접 가보지
않아도 그 도시를, 혹은 나라를 상상하게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피라미드가, 파르테논이 있는 땅을 밟았을 때, 상상하던
이미지가 배반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위의 사진] 아침
빛을 받은 타지마할
저는 이집트도, 그리스도 가보진 못했지만 비슷한 경험을 인도의
타지마할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인도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아름다운 타지마할은 북인도 아그라라는 도시에 있어요. 지구상에서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을 꼽는다면 결코 빠지지 않을
타지마할은 실제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는 전혀 아름답지 않아요. 인도 내에서도
위험하고, 사기꾼이 많기로 유명한 아그라는 특히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여행자들을 상대로 하는 사기가 유명합니다.
특히
타지마할 근처의 몇몇 숙소에서는 지역 병원과 짜고서 음식에
식중독 균을 넣어서 여행자들을 병원으로 데려가 엄청난 병원비를
지불하게 하는 사기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근처의
공장에서 나오는 연기때문에 타지마할의 하얀 대리석이 부식되고
있지요.
 [위의 사진] 숙소
옥상에서 본 타지마할. 이 숙소가 문제의 그 숙소는 아닐겁니다.
그래도 숙소에서 식사는 안했어요.ㅡㅡ;
인도라는 나라는 타지마할로 상징되는 아름답고, 깨끗하고, 정적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지요. 오히려 정신없고, 더럽고, 다양한
색깔이 뒤섞인, 오히려 그점이 매력이 될 수 있는 나라니까요.
이처럼
한 도시의 얼굴은, 그 곳의 성격을 잘 보여주면서, 또 배반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서울의 얼굴은 무엇이일까요.
수백년의
역사를 지닌 서울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서울을
가장 잘 대표해왔던 얼굴 중 하나가 숭례문이 아니었을까요.
관광
가이드북이나 서울 소개 책자에 빠지지 않을, 우리의 국보 1호 말입니다.
 [위의 사진] 숭례문
야경
어떤 외국인은 예전 숭례문의 사진을 보면서 초현대적인 건물들과
전통적인 숭례문의 대비가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제 눈에는
거대한 건물들과 도로에 둘러쌓인 숭례문이 마치 혼자 작은 섬에
있는 것처럼 외로워보이기는 했지만, 그 모습 자체가 우리가
살고있는 21세기의 서울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에 의해서 하룻밤 만에 불타 사라져버렸지요. 그렇게
오늘 우리의 얼굴은 돌이킬 수 없는 화상을 입었습니다.
 [오른쪽 사진] 불타는
숭례문 2001년 미국의 세계무역센터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외부의
적에게, 혹은 내부의 적에게 공격을 당했습니다.
단지 도시가
상처가 입은 것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미국은
지울 수 없는 흉터를 가지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흉터가 지금 미국의
얼굴을 만들어갑니다.
우리가 입은 오늘의 상처는 과연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요.
전에도 방화를 저지른 경력이 있는 70대
노인은 부족한 토지 보상금 때문에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누구나 보상금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범인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않을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사회에 불만을 품은 한 사람이 도시 한복판에 불을 붙이고, 그
불이 국가적 보물을 몇 시간만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도록 방치한
것.
오늘 우리의 부끄러운 얼굴입니다.
 [위의 사진] 100년
전의 숭례문
숭례문은 정확한 상세 도면에 따라 아마도 복원될 것이고, 사람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숭례문 주위를 지나쳐가겠지요.
서울을
소개하는 가이드 북에는 여전히 꼭 가봐야 할 관광지로 숭례문을
넣을 것이고, 조그맣게 2000년대 초반, 어느 노인에 의해 거의
불탔다가 다시 복원되었다고 적혀있겠지요.
그렇게 아픈
기억을 간직한 채로 여전히 서울을 대표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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