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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1월 5일까지 경주에서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사가 열리는 보문단지에는 황룡사를 음각한 ‘경주타워’가 서있어요.

    82미터 높이의 유리 박스 중간을 사라진 황룡사 9층 목탑 모양으로 뚫어놓은 이 타워는
    2개의 엘리베이터로 위에 올라가 옛 서라벌을 관망할 수도 있고,
    밤에는 타워를 스크린으로 해서 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멀티미디어쇼도 하는 모양입니다.


[위의 사진] 경주타워의 낮과 밤

    저는 지난 여름 경주에 갔을 때 차로 지나치면서 힐끗 보았는데
    언뜻 보기에 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 지구에 있는 신개선문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천년도 훨씬 전에 지어진 목탑을 새로운 재료와 공법으로,
    그것도 실제 목탑을 비워두고 만든 것은 꽤 재밌는 생각처럼 보입니다.
    사라진 탑을 상상해서 만든 목탑의 허상을 투명한 유리창과 철근 구조가 감싸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밤에는 용이라던가, 신라의 미소라 불리는 수막새 등을
    현란한 색색의 레이져로 음악과 함께 유리창에 비추고 있다고 합니다.
    마치 사라진 과거를 현대의 시각과 기술로 재구성하여, 그 ‘천년의 과거’를 실체로 만들어내는 것처럼요.

    탑을 왜 세우는 것일까요?
    최초의 탑은 석가모니의 무덤이었습니다.
    붓다가 열반에 든 후 인근의 부족들이 그의 유해를 두고 서로 다투자
    화장 후 남은 재를 여덟으로 나누어 8개의 탑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원래 사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구슬 같은 게 아니라 그냥 화장 후에 남는 재를 가르키는 말이었어요.
    당시에는 붓다의 상을 만드는 전통이 없었기 때문에 탑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숭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위의 사진]
간다라의 열반도 조각.부처님은 이렇게 오른팔을 베고 누워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최초의 탑의 모습은 기원전 3세기 아쇼카왕이 세웠다고 전하는 탑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아쇼카는 오릿샤 지방을 정복하던 중 불교에 귀의하게 되고,
    이후 무력이 아닌 불법으로써 그의 영토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는 석가모니 사후 만들어진 근본 8탑을 열어 사리를 나누어
    그가 정복한 지역 전역에 8만4천기의 탑을 세웠다고 해요.

    지금 인도에 남아있는 산치와 아마라바티의 대탑과
    간다라 지역에 남아있는 다르마라지카 대탑들은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원래 모습대로 잘 보존된 산치 대탑과, 아마라바티에서 출토된 부조들로 당시의 탑의 형태를 볼 수 있는데,
    이 당시의 탑은 반구형의 안다(알이라는 뜻) 중심에 야슈티(찰주)가 꽂히며
    그 위에 고귀한 신분을 상징하는 차트라(산개, 우산같은 용도)가 올라가는 것이 기본 형태였어요.
    알, 혹은 자궁을 상징하는 반구 형태는 우리나라의 석탑과는 매우 다른 미감을 주는데
    우선 거대한 크기에서 압도적이며 완전한 세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사진] 산치대탑의 평면입면도

    산치 대탑
    델리에서 특급열차로 6시간정도 걸리는 보팔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가면 작고 평화로운 마을 산치에 도착합니다.
    작은 박물관이 하나 있는 시골 마을이지만 여행자를 위한 숙박시설이 있긴 해요.
    전 당시 일정때문에 급하게 이동하느라 당일로 다녀왔습니다.

    기원전 1세기쯤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산치의 탑들은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유적이 잘 남아있어요.


 [위의 사진] 산치의 제 1대 탑

    우리나라에도 탑돌이 행사가 남아있지만, 인도에서도 탑은 돌면서 숭배하도록 되어있어요.
    주의해야 할 것은 태양이 도는 방향대로, 오른쪽 어깨를 탑 쪽에 두고 돌아야 합니다.  
    탑 주변의 베디카(울타리)안으로 들어가면 돌 수 있는 길(프라닥시나 파타, 요도)이 있고,

    기단 위로 올라가면 또 돌 수 있는 길이 있어요.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는 탑도 탑이지만,
    사람들을 더 매료시키는 것은 그 울타리와 문에 새겨진 섬세한 조각들입니다.

    당시 이 근처에 상아를 조각하는 장인들이 조각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매우 섬세하고,
    빛을 받으면 강한 대조가 되어 조각들이 더욱 살아납니다.
    조각들은 주로 토라나라고 하는 사방의 문에 집중되어 있어요.

    조각되어 있는 내용은 붓다의 일생을 다룬 불전도와
    붓다의 이전 생들의 이야기인 본생담으로 나눌 수 있어요.

    그 위에도 인도의 토속신들이 불교와 융합되어 약사와 약시 등이 나타납니다.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고대 인도의 의복이나 건축 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지요.


[위의 사진] 붓다가 전생에 원숭이왕이었을 때 적들이 쫓아오자 냇가 건너편에 넘어갈 수 있도록
자기 몸으로 다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조각한 것이랍니다. 위쪽에 있는 원숭이 왕이 보이시나요?

    산치에는 스투파가 3개가 남아있고, 그 위에 승려들이 수행하던 승방 등 유적들이 남아있답니다.
    인도 곳곳의 이런 불교유적에는 우리나라는 물론 인도 북부의 라닥에서 온 순례자들이 많았어요.
    전통옷을 입으신 귀여운 할머니들와 스님을 만났습니다.

    산치에서 느긋한 오후를 보냈습니다.
    가끔 단체 일본인 관광객이 오기도 했지만
    산치는 잘 꾸며진 공원 같아서 가족끼리 놀러온 인도인들도 많았어요.

    한때는 엄숙하고 경건한 불교 사원이었지만 지금은 평화로운 기운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탑 이야기는 다음까지 이어집니다.
    다음에는 인도의 아잔타와 간다라 지역의 탑을 소개할께요~

    P.S.  11월 13일에 학교 답사로 중국 시안에 갑니다.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시안의 옛 이름)에는 대당서역기로 유명한 현장법사가 만들었다고 하는
            대안탑이 있어요. 인도에서 만들어진 탑이 동쪽으로 오면서 어떻게 변해왔는지, 잘 보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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