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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수천년 뒤, 숲은 사막이 되고 사막은 숲이 되는 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발굴'한다면 과연 지금 이 '과거'를 어떻게 해석할까요?

    아마, 잘 썩지 않은 소재로 만들어진 작은 휴대용 통신장치를 발견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주고 받아진 짧은 메시지들을 발견하겠지요.

    그 가느다란 실들을 엮어서 지금이라는 과거를 재구성하면
    작은 진실들은 그 성긴 틈으로 빠져나가고, 어떤 앙금들이 남게 될까요?

    지금 우리가 4000여년 전 모헨조다로를 보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인장과 벽돌조각들로 그들의 삶을 상상해보듯이 말이죠.

    상상에는 항상 불확실성이 따릅니다.
    하지만 상상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다시 볼 수 있다면,
    과거를 다시 그려보는 일이 결코 미련한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사람의 속마음을 추측해보는게 쓸모없는 일이 아니듯이,
    과거를 추측해보는 일도 결코 미련한 일은 아닐 겁니다.

    이번 글은 두 도시 이야기-모헨조다로VS샹디갈의 두 번째 글입니다.
    첫번째 글을 보려면 여길 클릭하세요~ :)  
     (@쁘리띠주)

    모헨조다로(Mohenjo-Daro)

    모헨조다로 유적에서 처음 보이는 것은 타오르는 햇볕에 녹아버린 듯한 벽돌들이었습니다.
    겨울이었음에도 뜨거운 태양 아래 지금의 모헨조다로는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에요.
    하지만 4천년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온화한 기후였다고 합니다.

    도시를 건설하는 데 사용된 수많은 벽돌을 구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나무가 있었을 테니까요.


    유적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가장 먼저 보이는 구역에 중요한 유적들이 있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스투파(탑)와 그 옆의 목욕탕이 그것인데요.

    재밌게도 스투파는 당시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인도에서 불교의 스투파(인도의 탑은 우리나라의 탑과 달리 네모난 기단 위에 반구형의 돔이 얹혀져 있습니다)
    숭배가 활발하던 기원 전후에 지어졌다고 해요.

    그렇다면 인더스 문명이 사라진 후에도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이겠지요.

    그 옆의 목욕탕은 당시의 유적으로 보는데, 단순히 목욕을 위한 시설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목욕탕의 위치나 규모, 형태를 보면 종교적인 의식과 관련된 시설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모헨조다로의 가장 큰 특징이 잘 발달된 상하수도 시설이고,
    인더스 강이 이 도시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볼 때 당시에 '물'이 가지는 중요성을 상상해볼 수 있지요.


    사람들이 사는 거주지역은 집의 규모에 따라 계층이 나누어집니다.
    넓은 집은 여러 개의 방으로 되어 있고, 일반 노동자들이 사는 집은 부엌을 포함해 2~3칸으로 되어 있어요.
    높은 벽에 목재로 된 보를 걸쳐놓은 흔적으로 봐서 2층집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유적을 돌아다니다 보면 역시 눈에 띄는 것은 곳곳에 있는 우물과 화장실,
    그리고 각 집에서 배수로를 통해 길 가운데로 모이는 하수시설이었어요. [아래 사진]

    냄새가 나지 않고 청소하기 쉽도록 길 중간에서 벽돌로 덮여있지요?
    얼마전만 해도 도시에서 볼 수 있던 배수시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유적 구석구석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는 언덕에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뼈조각, 토기의 잔해와 뱅글 조각 등이 남아있어요.

    4천년 전 이곳에 살던 이의 유해였을까요?
    역시 죽은자들의 언덕이라는 모헨조다로, 그 이름에 딱 맞는 곳입니다.

    샹디갈(Chandigarh, 찬디가르)
    인도에서 가장 어린 도시, 샹디갈로 다시 가보겠습니다.

    샹디갈은 주거, 상업, 레저, 교육, 행정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역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도시의 머리 부분에 있는 행정 구역입니다.

    정부청사, 주의회와 대법원이 모여있는 이 곳은
    샹디갈에서 르 꼬브뤼제의 손길을 가장 많이 담은 곳이기도 하지요.

    법원에 걸린 테피스트리(직물로 짜여져 벽에 거는 걸개) 하나에서부터
    도시를 상징하는 'Open Hand' 상징물까지,
    르 꼬르뷔제는 도시의 머리인 이 곳에 많은 정성을 쏟아 부었습니다. [아래 사진]

    이 정부청사건물들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미리 관람안내소에서 허가를 받아야하는데 주말에는 입장할 수 없습니다.
    허가를 받고 나서도 각 건물에 가서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하고, 그 후에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공무 수행 중인 곳이니, 여행자의 욕심은 잠시 접어두셔야 합니다.
    좀 아쉽지만 제가 보았던 부분만으로도 르 꼬르뷔제는 '콘크리트의 마법사'란 호칭이 아깝지 않았어요.

    직선과 곡선, 메스와 보이드 그리고 빛과 그림자를 적절히 사용해서
    르 꼬르뷔제는 참으로 아름다운 건축을 빚어냈습니다.....만,
    실제로 이 엄청난 콘크리트 덩어리는 인도의 뜨거운 햇빛 아래서 엄청난 열기를 뿜어 낸다고 합니다.

    덕분에 냉방비가 엄청 많이 드는 비싼 건물이 되어버린 것이죠.

    이 건물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을 주려던 네루 수상의 의도와 달리
    샹디갈은 인도에서 가장 깨끗하고, 또 가장 비싼 도시가 되어버렸습니다.

    역시 아름다운 것은 적은 비용과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요?

    [오른쪽 사진] 르 꼬르뷔제가 비례의 척도로 사용한 인체 그림을
    콘크리트 벽에 도장처럼 찍어놓았습니다.

    샹디갈의 매력은 단순히 르 꼬르뷔제의 건축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어린 도시에는 의외의 매력이 숨겨져 있는데,
    바로 행정 구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Rock Garden'입니다.

    아주 저렴한 입장료 10루피(한화로 220원정도)를 내고
    들어가면 동화 속 세계가 펼쳐집니다.


[위의 사진] Rock Garden

    좁은 길을 따라 계곡과 폭포를 구경하며 숨바꼭질 하듯 다리를 지나 들어가면
    안쪽엔 그네를 탈 수 있는 광장이 나옵니다. (꼭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 가세요.ㅜㅜ)



빠져나오는 길에는 여러가지 귀여운 동물과 사람 인형들을 볼 수 있어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들이 폐타이어나 깨진 접시 등 폐자재로 만들어졌다는 거에요.

    이 공원을 만든 사람은 넥 챤드(Nek Chand)라는 하급 공무원이었는데
    취미로 쓰레기로 예술 작품을 만들던 그에게
    정부에서 일정한 땅을 주고 맘껏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한 개인이 보잘 것 없는 재료로 시작한 일이
    정부의 도움과 인정을 받아 이 도시의 명소로 태어난 것이지요.

    세계적인 건축가인 르 꼬르뷔제가 설계한 계획 도시인 '샹디갈'에서 더욱 의미있는 곳이 아닌가 합니다.

    어쩌면 도시는 '만들어질'수 있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챤디갈과 모헨조다로. 이 두 도시 사이에 우리의 수도 서울이 있습니다.

    사람의 인생으로 따지면 한창 때인 서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요?

    시대와 사람을 보여주는 창인 도시-서울을 우리는 지금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도시에 살아있는 사람이 다 사라지더라도, 도시는 남아 '지금 우리'를 증명하겠지요.

    모헨조다로에서 만난 사람
    모헨조다로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크고 검은 두 눈만 내어놓은 한 친구, 타슬림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모헨조다로 근처 공항에서 보안 요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동생과 둘이 사는 집이 제가 가던 로리의 기차역 바로 옆이었어요.

    기차역에서 기차 출발시간까지 오래 기다려야 했는데
    그녀의 초대를 받아 저녁와 차를 대접 받고, 잠시 눈을 붙일 수도 있었어요.

    기억에 남는 것은, 검은 망토를 벗고 나니
    집에서 츄리닝을 입는 우리와 별 다르지 않았던 타슬림과
    '누구도 믿지 말라'는 그녀의 조언, 그리고 그녀의 소박한 집이었습니다.

    작은 마당과 부엌, 그리고 침실로 이루어진 집은 모헨조다로의 유적과 그리 다르지 않았어요.
    게다가 길 중간에 있는 배수구는 모헨조다로에서 보았던 것도 똑같았습니다.

    4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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