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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기 전, 인도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가 있었습니다.
    인더스 문명을 대표하는 도시인 모헨조다로, '죽은 자들의 언덕'이라는 뜻이지요.

    영국 식민지 시절 철도를 놓다가 발견된 이 유적은 2500여년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죽어있는 도시입니다.

    인도가 파키스탄과 분리되면서 모헨조다로를 비롯한 인더스 강 유역은 파키스탄의 땅이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경계인 펀잡주도 둘로 나뉘면서 원래 주도였던 라호르 역시 파키스탄으로 넘어오게 되지요.

    인도의 초대수상이었던 네루는 새로운 펀잡주의 주도를 계획하게 됩니다.
    시크교도의 도시이자 두번째로 큰 도시였던 암리차르를 주도로 하기엔 파키스탄의 국경과 너무 가까웠고,
    결국 좀더 동쪽의 조그만 마을이 있던 곳에 파키스탄 쪽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새로운 도시를 만들기로 한 것이죠.

    그 도시가 바로 20세기 건축의 신화가 된
    르 꼬르뷔제의 찬디가르(인도식 발음) 혹은 샹디갈(프랑스식 발음) 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시인 모헨조다로와 가장 현대적인 도시 찬디가르.
    저와 함께 두 도시로 여행을 떠나볼까요?


[위의 사진] 라르카나(Larkana)와 찬디가르(Chandigarh)

    모헨조다로(Mohenjo-Daro)

모헨조다로 가는 길
모헨조다로는 인더스 강의 서안, 파키스탄의 남쪽에 있습니다.
보통 아라비안 해 연안의 카라치에서 비행기를 타고 갑니다만, 저는 라호르에서 기차를 타고 다녀왔어요.
모헨조다로는 라호르에서 서두르면 무박 2일로 다녀올 수 있습니다.

모헨조다로까지 직접 가는 기차편은 없고 서커르나 로리라는 도시에서 버스를 몇 번 갈아타야 해요.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가는 길에 북쪽 산악지방과는 다른
평화롭고 아름다운 파키스탄의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라호르에서 야간 열차를 타고 로리역에 아침에 도착해 인더스 강을 건너 서커르란 도시로,
서커르에서 라르카나로 갔습니다.


[위의 사진] 가는 길의 인더스 강 풍경.

    라르카나에서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다 모헨조다로 삼거리에서 내려서 릭샤를 타야합니다.
    다행이 삼거리엔 작은 찻집이 있어서 짜이 한잔을 시켜놓고 기다렸어요.

    모헨조다로에 가까이 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두근.
    짜이가게 아저씨가 릭샤를 잡아주어서 양떼 사이로 달려 갔어요. [위의 사진]

    이제 5분 정도 가면 모헨조다로에 도착합니다.
    당일치기라 시간이 넉넉치 않아서 박물관은 포기해야 했어요.

    로리에서 모헨조다로까지 약 3시간 정도 걸려서 모헨조다로에 도착하니 어느덧 한낮이었거든요.

    혹시 가시게 되면 좀 여유있게 일정을 잡으시고
    근처 인더스강도 찬찬히 둘러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위의 사진] 여기가 바로 모헨조다로 입구

    모헨조다로는 1865년 영국이 카라치에서 라호르를 연결하는 기차길을 만들다가 우연히 발견되었어요.
    당시 일꾼들이 여기서 발견된 벽돌을 가져다 길을 만드는데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바로 4000천년 전에 만들어진 벽돌이었죠.

    인더스 문명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더스 강 유역을 포함해
    인도 구자라트까지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었고
    기원전 2600년에서 1900년 사이에 꽃피웠을 거라고 추정됩니다.


[위의 사진] 벽돌로 지어진 모헨조다로

    인더스 문명의 발견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들 도시는 격자형의 배치와 과학적인 배수시설을 갖추고 있었어요.
    수백 개의 우물에서 길러진 물이 상수도를 통해 생활용수로 쓰였고,
    아주 작은 집이라도 오물을 배출해서 내보낼 수 있는 하수도가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 하수도 시설이 생긴게 몇 백년 되지 않은 걸 감안한다면 더욱 놀라운 사실이죠.
    게다가 인더스 강의 범람을 고려한 도시의 제방까지,
    이들 문명은 농경에 기반을 둔 평화롭고 진보된 문명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여기서 발견된 수천개의 인장입니다.


[위의 사진] 동물과 문자가 새겨진 인장

    아직 해독되지 않은 상형문자와 동물, 요가 자세의 신상들이 새겨진 이 작은 인장들은
    무역이나 의식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인장들은 인더스 문명 뿐만 아니라 서쪽의 수메르 문명에서도 발견이 됩니다.
    당시 인더스 문명과 수메르 문명이 교류했다는 증거이지요.

    사람들을 더 궁금하게 하는 건 이토록 고도의 문명이 왜 갑자기 사라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항상 고도의 문명들은 다 갑자기 사라졌죠. 잉카나 마야문명도...-,.- 정말 왜일까요? @쁘리띠주)

    갑작스런 홍수나 가뭄이 원인이라는 설도 있고,
    유목민인 아리아족들이 갑자기 쳐들어왔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어요.

    모헨조다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도,
    유적 중 한 장소에서 한번에 살해당한 듯한 사람들의 유골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던 인더스 문명은 사라지고 1500년 이후에나 다시 문자가 사용되었죠.
    하지만 이 인더스 문명은 여러면에서 이후 인도땅에서 살아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인장에 등장한 동물이나 신상들, 지모신 들은 분명히 이후 인도의 문명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죠.
     

    [왼쪽 사진]
    하라파에서 출토된 춤추는 무희


    어떤 학자는 인더스 문명의 주인이
    지금 인도 남부에 살고 있는 드라비다 족일 거라고 얘기하기도 해요.

    하라파에서 나온 춤추는 여인의 상이 드라비다 인들과 닮았고,
    아리아의 경전인 베다를 통해서 아리아 인들의 피부가 하얀데 비해
    이들의 피부가 검었으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죠.

    어쨌든 이처럼 인도라는 땅에 발을 디딘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뒤섞여살아가는 방법으로써
    카스트라는 제도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카스트는 포르투칼 말이고 인도에서는 이 제도를 바르나라고 부릅니다.
    바르나는 원래 색깔, 이라는 뜻이래요.)

     
    샹디갈(Chandigarh, 찬디가르)

찬디가르로 가는 길
건축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인도에서 분명히 찬디갈에 가고 싶으실 거에요.

신처럼 숭앙받는 건축가 르 꼬르뷔제가 직접 설계한 도시,
게다가 그의 멋진 건축도 한번에 볼 수 있으니까요.

저역시 파키스탄에서 인도로 넘어오자마자 찬디가르로 향했습니다.

국경도시인 암리차르에서 챤디갈까지는 버스로 5~6시간 정도 걸립니다.
델리에서 찬디갈까지는 3시간 반정도 걸리는 특급열차인 셔타브디가 있고
6시간 걸리는 야간열차도 있는데 저는 시간도 절약할 겸 야간열차를 이용했어요.

찬디가르는 인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다른 관광지처럼 저렴한 숙소를 찾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터미널 근처 섹터22에 300루피 정도의 깨끗한 호텔이 밀집되어 있고
저처럼 밤 늦게 도착한 여행자를 위해서 버스 터미널에도 숙소가 있어요.

버스터미널은 남자분이라면 저렴한 도미토리에서 묶으실 수 있는데
여자 여행객은 어쩔 수 없이 싱글룸에 묵어야 합니다.

저도 첫날은 500루피에 그 숙소에서 묵었고 다음날 좀 더 저렴한 곳으로 옮겼어요.

챤디가르는 숙소는 비싸지만 그 돈을 아깝지 않게 해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바로 외국인 차등 요금이 없는 아주 저렴한 입장료!

각종 박물관, 공원들이 무료이거나 10루피 정도이니
다른 도시에서 차별요금에 가슴 아프셨던 분들, 기분 좋으실 거에요^^


인도의 수상인 네루는 '찬디가르'를 인도의 자유를 상징하며
과거의 전통에서부터 자유롭고
미래의 국가의 믿음을 표현하는 도시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왼쪽 사진] 르 꼬르뷔제가 행정구역에 설계한 조형물.

하지만 재밌게도, 처음 도시의 설계는
네루와 친분이 있던 미국인 건축가 알버트 마이어에게 맡겨집니다.

인도의 새로운 도시를 미국인에게 맡긴 것이지요.
신도시의 위치가 정해지고, 초기 배치안이 나온 뒤
담당하던 건축가가 사고로 죽게 되고
그 후임으로 꼬르뷔제가 새로운 도시의 설계 책임자로 초빙되어 옵니다.

    [오른쪽 사진] 20세기의 위대한 건축가 르 꼬르뷔제

    건축을 하다보면 새로운 도시를 꿈꾸게 됩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을 설계하는 건축가들이
    건축뿐 아니라 가구와 도시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죠.

    20세기 초, 유리, 철,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와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건축의 역사를 다시 쓰던
    르 꼬르뷔제 역시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건축과 달리 도시를 건설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 었습니다.

    완성되지 못한 여러 계획안을 품고 있던 그에게,
    드디어 그가 꿈꾸는 도시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미완성 도시인 찬디갈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매우 제각각입니다.


 [위의 사진] 싸이클 릭샤만 없다면 유럽 도시라고 생각될 정도에요.

    유럽식의 건축기법을 사용한 건축물은 우선 인도의 후덥지근한 기후에 잘 맞지 않았어요.

    게다가 인도 답지 않은 널찍널찍한 길과 공원, 주택가는 깨끗하고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긴 하지만
    인도에서 가장 비싼 도시라고 불리워질 정도로 있는 자들을 위한 도시가 된 것입니다.

    당시, 파키스탄에서 넘어온 사람들을 위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네루의 계획대로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곳에 살고 있을지 궁금하더군요.

    그러나 도시 계획에 대한 여러가지 찬반논쟁과는 별도로 그가 직접 설계한 국회의사당과 종합청사,
    그리고 대법원은 그야말로 콘크리트와 빛의 마법사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멋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찬디갈과 모헨조다로는 4000여년이 넘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몇몇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요.
    바로 기능별로 분화된 계획도시라는 점, 그리고 도시의 구조가 격자형으로 나눠져 있다는 점입니다.


[위의 사진] 찬디가르 배치도

    챤디가르는 행정과 상업, 휴식, 레저, 주거 등 기능별로 나뉘어 배치가 되어 있어요.

    꼬르뷔제는 주청사, 대법원 그리고 행정부를 머리로 하고 1200x800m를 한 모듈로 하는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그 사이를 반듯하고 넓은 길이 격자로 나있어서 길 찾기도 쉽고, 교통 소통도 원활합니다.


[위의 사진] 모헨조다로 부분 배치도

    모헨조다로도 마찬가지로 계획도시였어요.
    중심축이 되는 남북의 넓은 도로를 중심으로 격자 형태의 주거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각 지구별로 사는 사람들의 신분이 달랐다고 해요. 집의 크기와 형태로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격자형 도시는 도시 계획에 앞서 사전에 계획이 있었음을 알려주지요.

    서울의 경우, 원래 시가지가 있던 강북과 새로 조성된 강남을 비교해봐도 바로 알 수 있어요.
    오랜동안 지형과 필요에 따라 자연스레 만들어진 길을 가진 강북과 격자 형태로 시원스레 뚫린 강남의 길을 말이에요.

    후자가 편리하긴 하지만, 자연스러운 길과 공간이 가지는 매력도 크지요.
    찬디가르와 모헨조다로의 도시가 가지는 차이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찬디가르는 아직 완성된지 50년도 안된 아기같은 도시이고
    모헨조다로는 약 천년 동안 수없이 재생되어온 도시에요.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모헨조다로에는 약 7개의 층위가 있다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이전의 도시 위에 새로운 계획도시를 세웠고
    그 도시는 놀랄만큼 기능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도시 형태를 보완하고 수정해나가면서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모헨조다로를 건설한 것이지요.

    반면 찬디가르는 이상적인 도시를 꿈꾼 프랑스인 건축가의 머리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는 지구상 어떤 곳에 있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유니버셜한 모습을 하고 있지요.

    르 꼬르뷔제가 인도의 종교와 역사, 문화에 대한 고민을 얼마나 했을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도시는 좀더 그 땅에 살고 있는 인간과 밀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헨조다로에서 처음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도시가 태어나고
    이후 천년동안 성장, 발전하다가 결국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멸망한 것처럼
    찬디가르도 시간이 지날수록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하겠지요.

    도시는 반드시 인간을, 그리고 삶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두 도시 이야기-모헨조다로와 찬디갈은 다음달까지 이어집니다!
    다음 편에는 도시 안으로 들어가 모헨조다로와 찬디갈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보여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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