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제게 가장 두려운 게 머냐고 묻는다면 저는 '고통'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이 고통에는 마음의 고통과 함께 육체의 고통도 포함됩니다.
영화를 보면서 잔인한 장면이 나올 때 그 고통을 상상해 본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요. 게다가 저는 가끔 내가 고문을 받는 상황이 된다면, 정신적 신념과 육체의 고통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라는 참 하릴없는 고민을 하기도 한답니다. (과연 결론은?ㅡㅡ;) (전, 정신적 신념 포기요. -_-;; @쁘리띠주)
사랑에 있어서도 몸의 사랑과 마음의 사랑이 함께하는 것처럼 인간은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저는 두 번 이슬람 국가들을 여행하는 동안 우연히 두번 다 '성스러운 피'를 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충격적일 수 있으니(사진에 피가 좀 많이...--;) '피'에 약하시다던가, 노약자 임신부들은 더 이상 보지 않는 게 좋으실 겁니다.
 [위의 사진] 라호르 올드시티 안의 와지르 칸 모스크
올해 1월 말, 파키스탄을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시아 모하람'이라는 축제가 열렸습니다. 저는 그때 라호르의 한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었어요.
이 게스트하우스는 전직 기자였다는 한 파키스타니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데 시설은 열악하지만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제공하여 라호르의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날도 이 '시아 모하람-self beating festival'을 근교 도시에 구경하러 간다고 다함께 모여 가는 행사가 있었어요. 1시 출발이었는데 제가 그만 2시에 일어나는 바람에,ㅡㅡ; 아무도 없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어나 썰렁한 라호르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이 축제라는 것이 여행 중에 만나면 참 좋기도 하지만요. 종교적 축제일에는 2~3일씩 모든 가게와 은행들이 문을 닫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터키에서도, 또 이번에 파키스탄에서도 꽤 불편했어요.
이때도 환전을 못해서, 파키스탄 돈 한푼 없이 돌아다녀야만 했지요.
어쨌든 복사한 지도를 들고 올드시티로 향하다 입구 근처에 있는 여행자안내소에 잠깐 들렀어요. 옛 하맘을 개조한 곳인데, 차 한잔을 대접받으며 싸게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청년을 만났는데 '미안하지만 내가 돈이 없다'라고 했더니 아주 안좋은 환율로 자기가 환전을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조금 고민하다가 그냥 나오려는데, 조금 있다 가라고 저를 붙잡는 겁니다. 지금 나가면 사람도 너무 많고 정신없을거래나 머래나.
그때 판단하기로는 위험해보이지도 않았고, 더이상 시간을 지체하기 싫어서 올드 시티 안으로 더 들어가다가 이상한 열기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숙소에서 단체로 간 그 근교도시가 아니라 여기 라호르의 올드시티에서도, 그 Self Beating 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에요.
행사가 막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선 짐 수색을 받아야합니다. 구급차와 경찰이 줄지어 서 있고, 안쪽에서 피에 젖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걸어나옵니다.
 [위의 사진] 줄지어 서있는 경찰들과 대기하고 있는 구급차
그 이상한 열기에 끌려 저는 조금씩 더 올드시티 안으로, 종교적 열정에 피와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시아 모하람' 이라고 불리던 이 이슬람의 축제는 매우 성스러운 행사입니다. 이 축제의 시기는 무하람(muharram, 이슬람 력의 첫번째 달로 12달 중에서 신성한 4개의 달 중에 하나. 이슬람 력은 우리의 음력처럼 날짜가 조금씩 달라지지만 보통, 1~2월이 돌아옵니다)으로 기원 후 622년, 무하마드가 메디나에 도착한 날이기 때문이지요.
이 날은 원래 유태인들에게도 중요한 날로 기원 전 13세기, 모세가 홍해를 건넌 날이죠. 무슬림 역시 자신의 선지자인 모세를 기념하기 위해 이 날을 기념합니다. (이슬람에서는 그리스도교의 모세나 예수가 무하마드에 보다 앞선 그저 '선지자'라고 생각한답니다.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즉, 이슬람과 그리스도교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종교인 것이지요.)
그래서 무슬림들은 이 달 낮시간 동안 단식을 하기도 하는데 라마단 때와는 달리 의무적인 것은 아니에요. 특히 무하람의 10번째 날은 아슈라(Ashurah)라고 가장 성스러운 날입니다.
'셀프 비팅의 시작'은 예언자 무하마드의 손자인 이맘 후세인이 깔라바라 전투에서 순교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맘 후세인은 시아파 무슬림에게 매우 중요한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지요. 그가 순교한 날을 기념하며 이 날에 시아파 무슬림은 스스로를 때리는 추모 행사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위의 사진] 칼을 들고 머라고 외치고는 저렇게 휘두르기 시작해요.
거리에 사람은 많았지만 분위기는 매우 숭고합니다. Self beating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다 남자들, 어린 아이들부터 나이든 노인까지 다양해요.
작은 칼이 3~4개 매달린 사슬로 팔을 휘둘러 등을 때립니다. 손으로 그냥 철썩철썩 때리는 게 아니라 칼로 스스로를 때리는 거에요. 그러니 이렇게 피가 흐르겠지요...
 [위의 사진] 꼬마애들부터 할아버지까지.
처음엔 길 중앙에서 소규모로, 때리는 정도였는데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굉장히 성스러운 자세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위의 사진] 경건하게 기도하는 사람들
한편, 길에서는 몇몇 이들이 우유 한 잔, 짜파티 한 장, 볶음밥 등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무슬림의 나눔의 정신을 그야말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지요. 덕분에 돈 한푼 없던 저도 우유와 볶음밥, 그리고 후식으로 달콤한 스윗까지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어요.
이 기도가 끝나고 돗자리가 걷히고 나서 본격적인 Self beating이 이루어집니다. 웃옷을 벗고 스스로 나서는 사람들도,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들도 무척 경건한 모습입니다.
 [위의 사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Self beating
 [위의 사진] 쓰러져서 실려가는 사람도 나옵니다.
온 힘을 다해 스스로를 자해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눈물흘리는 사람들.
웃통을 벗은 사람들의 등에는 한두번이 아닌 수많은 Self beating의 흔적이 남아있더군요.
상처가 아물면 또 다시 등에 칼을 휘두르고, 그러면서 그들은 그들의 성인을 추모하고, 신을 만나는가 봅니다.
꼬마애들도 비장한 표정으로 참가하고, 이렇게 칼을 휘두르다나 쓰러지는 사람들도 있어요.
눈앞에서 스스로 칼을 휘두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핏방울을 옷에 맞으면서, 카메라를 든 제 눈에서도 괜시리 눈물이 흘렀습니다.
도대체 인간이란, 종교란 무엇이길래. 이렇게 스스로에게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일까요.
여행에서 돌아와 세달 후, '돈황'벽화에 관한 책을 읽다 시아 모하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도판을 보게 되었어요.
 [위의 사진] 부처님은 이렇게 오른팔을 베고 돌아가셨다고 해요.
 [위의 사진] 불상 왼편의 이들은 부처님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행동을 잘 살펴보니 그냥 슬퍼하는게 아니라 가슴을 칼로 찌르고, 코나 귀를 칼로 베려고 하고 있어요.
 [위의 사진] 확대한 사진들은 잘 보이라고 포토샵으로 손본 상태입니다. 현대에 제작되는 만화같이 생생한 인물들의 표정과 엄청 과장되게 표현된 음영법 등 매우 독특합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열반 장면에서 애도의 몸부림을 하는 것은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도, 불교가 융성했던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지요.
이런 전통은 불교도가 아닌 중앙아시아의 북방 유목민들에게서 전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천여년 전 여행자의 대선배격인 헤로도투스의 '역사'에는 스키타이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스키타이 인들은 자신의 지도자가 죽으면 이렇게 귀 한쪽이나 코를 베거나 하면서 슬픔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통이 동서-그리고 남과 북의-문명의 교차로인 돈황에서 만났던 것입니다.
 서양에서도 이런 자해의식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베스트셀러인 다빈치 코드에도 신앙을 스스로 고통을 주는 것으로 표현하는 알비노, 사일래스가 나오지요.
비록 영화에서는 비틀린 신앙으로 나오긴 하지만 사일래스는 수많은 사람을 죽이면서도 신을 위한 길을 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왼쪽 사진] 영화에서는 영국 배우인 폴 베타니가 섬뜻하게 사일래스를 연기하지요.
슬픔을, 혹은 신앙을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어쩌면 매우 순수한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어쩌면 순수하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폭탄을 짊어지고 뛰어들 수 있는 것일테고요.
시아 모하람 축제의 현장에서 만났던 한 할아버지는 제게 말했습니다.
곧 저녁이 되면 더 넓은 곳에서 수백명이 동시에 피를 흘릴 것이라고...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라고. 그리고 우리는 미국에 대항하여, 부시에 대항하여 이렇게 피를 흘릴 수 있다고.
 [위의 사진] 이런 종교와 전통은 끊임없이 되풀이 될까요?
종교가 없는 저로써는 도대체 이들이 무엇을 위해 피를 흘리는가, 잘 이해할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스스로 피흘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종교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1. 이렇게 무하람 때 Self Beating을 하며 이맘 후세인을 추모하는 것은 이슬람에서 정통으로 내려오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후세인은 죽기 전,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고 여동생에게 전했다고 해요. 하지만 많은 전통이 원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전해지듯, 이들은 내년에도 똑같이 피를 흘리고, 상처 가득한 등에 또다른 상처를 낼테지요.
덧붙이는 글 2. 제가 처음 이슬람 국가에서 피를 보았던 것은 2003년 이드(Id-Ul-Zuha)때 였어요. 이 날은 선지자 아브라함이 신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사랑하던 아들인 이스마일을 죽이려고 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명절이지요.
'Bakrid' 즉, 양의 이드라고도 불리는 이 때, 무슬림들은 가장 사랑하는 가족 대신 양이나 소, 염소 등을 대신 희생물로 바치고 그 고기를 이웃들과 나눕니다.
이날 우연히 아마시야에서 어느 마드래사-학교-에 들어갔다나 커다란 소가 목이 잘리는 장면을 목격했지요.
 [위의 사진] 비록 사진에서 이들은 꽤 즐거워보입니다만,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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