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비너스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밀로의 비너스? 혹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설마 여성용 속옷 상표가 떠오르시는 건 아닌지요.
비너스(Venus)는 아시다시피 그리스 신화에서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로마식 이름이에요. 미의 여신하면 떠오르는 게 아프로디테 보다는 비너스인 걸 보면 로마문화의 영향력이 크기는 컸나 봅니다.
이 '비너스'라는 이름은 원래 신화 속 여신의 이름이지만 넓게는 '여성성'의 대명사로도 쓰이게 됩니다.
2만 년 전 구석기 시대에 만들어져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조각상에게 '비너스'라는 이름을 붙인 것만 봐도, 여성용 속옷 브랜드 이름을 '비너스'라고 지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숭배의 대상으로써의 여성, 혹은 이상적인 여성으로써의 비너스-. 이번에는 지금까지 세계 곳곳의 '비너스'을 만나는 여행을 떠나볼까 합니다.
지난 겨울 인도를 여행하면서 보통 여행자들은 잘 가지 않는 파트나라는 도시를 가게 되었어요. 파트나 박물관에 인도미술에서 중요한 작품들이 많다고 해서 일정에 무리하게 껴 넣었는데 사람들마다 거기를 뭐 하러 가느냐, 그곳은 인도에서도 가장 못사는 비하르 주의 주도라 엄청 위험하다더라! 등등의 얘기를 많이 들었지요.
그래서 당일치기로 박물관만 둘러보기로 했는데 파트나는 의외로 괜찮은 느낌의 도시였습니다.
하여튼 500루피라는 엄청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서 기대하던 간다라 조각들은 별로 보지 못했지만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미인을 만났답니다.
바로 디디르간지에서 출토된 기원전 3세기 경의 약시상!
 [위의 사진] 디디르간지 약시상 in 파트나박물관, 파트나, 인도
약시는 인도의 토속적인 여신으로 주로 나무에 사는 정령으로 알려져 있어요.
망고나무 가지를 잡고 있는 약시는 나중에 석가모니의 탄생 장면에 모티브로 쓰이기도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석가모니는 나뭇가지를 잡고 서있는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해요~

배우자 격인 약샤와 함께 나중에 미투나상-카주라호의 힌두교 사원에 등장하는 남녀상-을 이루기도 하고요, 약샤는 나중에 동아시아에서 '야차'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인도 전통의 신에서 귀신의 하나로, 그리고 불교에서는 수호신으로 변신!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인 이누야샤의 야샤가 바로 이 야차의 일본식 발음이에요.
[왼쪽 사진] 개(이누)+귀신인 이누야샤!
인도뿐만 아니라 인류 초기에는 대지의 여신으로써 풍요를 상징하는 대지의 여신을 숭배하는 신앙이 보편적으로 나타나지요.
지금도 아이들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엄마'인 것처럼, 인간에게는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로 향하는 본능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런 신앙이 원초적으로 나타난 것이 이러한 여신들이지요.
 [오른쪽 사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in 자연사박물관, 빈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만 봐도 잘 알 수 있어요.
지금 보기엔 참 후덕한 몸매의 여성이 당시에 정말 아름답게 보였을지, 아니면 그냥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써 숭배의 대상이었을지는 확실히 알 순 없지만 2만년 후까지 남아있는 이런 '상'이 만들어졌다는 자체가 그 시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얼굴은 거의 없네요. 구석기 시대에는 얼굴보다 몸매(?)가 더 중요했나 봅니다.
거친 자연과 맞서며 하루하루 종족을 유지시켜나가는 게 중요했을 당시에는 이렇게 건강하고 생산력 있는 여성이 아름답게 보였을지도 모르죠.
 또 다른 '비너스'를 찾아가 볼까요?
[왼쪽 사진] 아르테미스 in 에페소, 터키
제가 터키의 에페소에서 만난 비너스는 무척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사실 이 분은 비너스라기보다는 당시 이곳에서 널리 숭배되고 있던 아르테미스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비너스'의 의미를 넓게 여신으로 확장시켜서 볼게요.
그리스 신화 속 아르테미스는 아폴론과 남매로 달의 여신이지요.
하지만 에페소 지역에서 아르테미스는 토속적인 여신 숭배와 결합되어 이러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바로 이 지역에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이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에요. 지금 아테네에 남아있는 파르테논 신전의 4배 크기였다고 하니까 어마어마했겠지요?
이 아르테미스 상은 인간의 상이라기보다는 정말 이교도의 상처럼 보입니다. 기둥 같은 형태에 특히 저 주렁주렁 달린 가슴은 그야말로 다산을 상징합니다.
이 상이 있는 에페소의 박물관에는 민망한 남근상도 있었습니다.
노골적으로 '남성성'과 '여성성'을 드러내고 '신'으로써 숭배했던 겁니다. 지금으로썬 상상하기 힘들지만 우리나라에도 어딜 가나 남근석 등등이 있는 걸 보면 인류의 어떤 보편성을 알 수 있어요.
 [왼쪽 사진] 밀로의 비너스 in 루브르 박물관, 파리.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너스는 이 밀로의 비너스가 아닐까요?
밀로스라는 섬의 농부가 밭 갈다 발견한 이 상은 로마 시대의 상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그리스 미술과는 달리 로마 미술은 좀더 실용적이고 화려하며 인간적입니다. 이 상은 그러한 로마미술에 대한 반발로 다시 그리스 시대로 돌아가자는 양식으로 만들어졌으나 아랫도리를 가리고 있는 옷의 주름을 보면 그리스와는 다른 로마의 특징이 보인다고 합니다.
사실 전 어렸을 적 이 상을 보면서 '이 몸매가 그렇게 아름다운가?'하는 의문이 들었답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알몸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옷을 칭찬하는 것처럼 제 눈엔 이 비너스의 아름다움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남자 같은 얼굴하며, 허리도 너무 굵은 것 같고, 팔도 없고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름의 아름다움을 발견 하긴 했지만, 어린 제 눈에 그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았던 까닭은 제가 사는 시대의 미의 기준과 당시의 기준이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마른 몸매를 아름답다고 하잖아요. 그런 '미'에 길들여진 눈에 이 성숙한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은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래요. '아름다움'이란 상대적인 것이었습니다.
자, 다시 파트나 박물관으로 돌아가 볼까요?
 [위의 사진] 디디르간지의 약시, 앞모습과 뒷모습
이 언니는 기원전 3세기 경에 만들어진 걸로 추정이 되요. 당시엔 인도에 아쇼카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 최초로 인도를 통일을 하고 불교를 전파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정복한 땅에 석주를 세우거나 바위에 칙령을 새겼는데 그 석주 위에 사자, 코끼리, 황소 등 다양한 동물이 올라가있지요. 그 동물들이 이 언니처럼 이렇게 겉 표면이 반질반질~해요.
조각을 보고 있으면 만져 보고플 때가 많은데 특히 이 상은 더더욱 그랬어요.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장된 몸매이긴 하지만 살아있는 듯한 얼굴 표현이나 살짝 나온 배가 어딘지 모르게 생생합니다.
특히 커다란 가슴 때문에 앞쪽으로 모인 목걸이나 오른손에 든 차우리-먼지떨이 비슷한 거예요-는 후대의 인도 조각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모티브에요.
저 목걸이는 처음엔 가슴 때문에 저렇게 모인 형태로 나타나다가 나중엔 아예 목걸이를 저런 모양으로 표현합니다. 차우리는 나중에 불교에서도 쓰이고요, 지금도 힌두교에서 푸자-제사의 일종-를 올릴 때 차우리를 쓰더라고요.
 [위의 사진] 힌두교의 푸자에서 사용되는 차우리
여튼, 저런 식의 옷차림이나 화려한 귀걸이, 발찌 등 장신구들도 인도미술의 특징 중 하나가 됩니다.
아래에 옷을 살짝 걸치고 있는 밀로의 비너스에 비해서 이 약시언니는 적절한 장신구와 소품들이 그 아름다움을 빛내주네요.
당시 사람들이 아름다운에 대해 가지고 있던 관점도 이렇듯 달랐을 겁니다.
이 상을 보자마자 저는 '파리엔 밀로의 비너스가 있다면, 인도엔 이 비너스가 있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만들어진 시기도 거의 비슷하답니다.
한참 뒤로 올라가 15세기 피렌체로 가볼까요?
 [위의 사진] 비너스의 탄생 in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이탈리아
너무도 유명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청순한 포즈의 이 언니는 사실 신체 비례가 잘 맞진 않지만 참 아름답습니다.
수줍은 척 하면서 알몸을 드러내놓은 비너스. 이렇게 대놓고 여성의 누드를 그릴 수 있는 그리스 신화와 성경의 모티브는 서양미술에 끊임없이 사용됩니다. 사그라지지 않는 인간의, 남성의 욕망을 대변하면서요.
하지만 조금 뒤 19세기의 조선에서는 이런 비너스도 나타납니다. 
[왼쪽 사진] 신윤복의 미인도 in 간송미술관, 서울
이 그림은 여염집 여인을 그린 게 아니라 기생을 그린 거라고 합니다.
언뜻 보면 매우 수줍은 여인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언니, 남자 홀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에요.
풍성한 치마 아래로 살짝 엿보이는 벌려진 다리와 반쯤 풀린 옷고름, 그리고 노리개를 만지작거리는 손을 보세요!
이렇게 대놓고 밝히진 못하지만 은근한 여인의 모습이 19세기 조선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여성성의 숭배의 대상으로써의 혹은 아름다움의 상징으로써의 비너스.
이렇듯 비너스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요.
그렇다면 우리시대의 비너스는 과연 누구일까요?
더 이상 신이 인간보다 사랑받지 못하는 시대. 현대에 신처럼 사랑받는 배우들일까요?
아름다운 김태희? 김희선? 혹은 정말 여신 같아보이는 이영애?
아니면 지금 멕시코에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미스코리아 이하늬일까요?

[오른쪽 사진] 2006 미스코리아 이하늬
수백년이 지난 뒤 과연 어떤 이미지가 남아 지금 우리 시대의 비너스를 보여줄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p.s. 개인적으로는 쁘리띠님도 이 시대의 매력적인 여성, 비너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쁘리띠님의 사진도 넣고 싶으나...허락해 주실지요.ㅎㅎ
(헉. 읽다 완전 깜짝 놀람. 너무 비교되잖아. --; @쁘리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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